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뉘른베르크 특수작전집단 재판 (문단 편집) == 상세 == 전쟁이 불리하게 돌아가자 아인자츠그루펜은 증거 인멸을 시도했지만 결국 전후 대부분의 범죄가 드러나 전범 재판에서 지휘관을 비롯한 수뇌부들에게 전쟁범죄 혐의로 재판이 이루어졌다. 특히 미군이 주최한 뉘른베르크 연속재판의 하나인 아인자츠그루펜 재판은 아인자츠그루펜만을 법정에서 다룬 것으로 유명한데 당시 24명의 아인자츠그루펜 지휘관들이 기소되어 그 중 22명이 사형 또는 징역형에 처해졌다. 물론 현재에도 많은 대원들이 정체를 숨기고 일상으로 돌아갔으며, 대부분은 노환으로 사망했지만 지금까지도 [[시몬 비젠탈]] 센터를 비롯한 나치 잔당을 추적하는 단체들은 이들을 쫓고 있다. 재판 이후에도 아인자츠그루펜 대원들은 동서독 양쪽에서 정체가 발각되어 처벌을 받은 경우가 많았다.[* 대표적인 예가 요제프 블뢰체(Josef Blösche, 1912~1969)라는 인물로, 아인자츠그루펜에 참여했음은 물론 그 SS 내부에서 조차 쓰레기로 낙인찍힌 [[디를레방어 여단]] 소속이었다. 전후 소련군의 포로가 되었지만 동독으로 보내졌으며, 사고로 인해 얼굴이 심각하게 손상되었다. 그 와중에도 결혼하고 두 아이를 낳으며 정체를 숨기고 살아 오다가, 1961년 서독 함부르크에서 전직 SS 동료가 그의 범죄 행각을 재판에서 폭로하면서 동독 경찰에 의해 정체가 발각되어 1967년 체포되었다. 이후 1969년 사형 선고를 받고 라이프치히에서 [[총살형]]에 처해졌다.(이 자는 "A Jewish boy surrenders in Warsaw" [[https://en.m.wikipedia.org/wiki/Warsaw_Ghetto_boy#/media/File%3AStroop_Report_-_Warsaw_Ghetto_Uprising_BW.jpg | # ]]라는 유명한 사진에도 총을 들고 나오며, 이 사진에서 맨 앞에 서 있는 소년은 1942년 당시 7살이었던 츠비 누스바움(Tsvi C. Nussbaum, 1935~2012)으로, 이 소년의 부모는 살해당하나, 이 소년은 살아남아 이후 뉴욕에서 의사로 일하다 2012년 사망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